[스크랩] 하저.........
지금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수 있는 곳,
하저를 내가 처음으로 가 본건 영덕농고 2학년 봄소풍때였다
도메뚜들 영덕여중학교을 지나 화장터가 있는 재를 넘으니
작은 개울이 보이고 그 개울에는 다리가 놓여있었으며
그 다리밑에는 여러마리의 소들이 온몸으로 한가로이 봄햇살을 받고 있었다
교련복입은 갈래머리 여학생들의 갑작스런 출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청년들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검푸른 바다 하얀파도에 매료되어 탄성을 지르른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때 내가 무슨 큰 도시처녀나 되는 둣 그 마을에,그 마을 주민들에 매우 으시대고 있었다
겨우 재 하나를 사이에 둔것뿐인데 그 가당찮은 우월감이라니.
그로부터 딱 10년뒤,
나는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집의 며느리가 되어 그 바닷가마을을 다시 찾았다
참으로 알수없는 건 우리들의 미래인것을.
농사짓는 집 딸에서 고기잡이하는 집 며느리가 된 뒤에도
내 선민의식(?)은 계속되었으며 나는 한참동안 그 집 며느리가 아닌 거의 관광객이었다
결혼한 그해 겨울이었을게다
나는 꽤 비싼 갈색코트를 입고 체크무늬 머플러를 두른채
시숙님은 그런 나를 마치 도회에서 온 손님 대하듯 친절하게 설명해가며 배려했고
배위에서 낫으로 바닷속 진저리를 벤다든가
줄을 당기면 문어가 들어있는 항아리가 올라오는 풍경을
너무도 신기해하는 내모습이 보기좋았는지 틈만나면 "또 따라 갈래요?" 하며 나를 부추기셨다.
이제는 모든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곳,
그 곳의 하루는 새벽2,3시쯤 고기잡이배로 향하는 시숙님의 오트바이 시동소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날이 밝는다싶으면 전화벨소리가 난다.고기 가져가라는 전화다
장에 나간 엄마 기다리듯 목뻬고 대기하던 남편과 시동생이 부둣가로 갔다오면
마당 한모퉁이의 수돗가에는 영락없이 퍼득퍼득 갓잡아올린 생선들이 쏟아지고
곧이어 칼 도마 초고추장이 등장하고 한쪽에서는 썰고 한 쪽에서는 먹고..
이런 이야기를 서울의 친구들에게 전하면 모두들 환장하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회맛을 모른다
그저 야들야들한 열무에 고추장 참기름 넣고 쓱쓱 비벼먹는걸 훨씬 맛있어 한다
다른 식구들은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면 바다 참 좋다고 연발하지만
나는 소나기 쏟아지는 바다,특히 태풍치는 바다가 가장 멋있어 보이니
아직도 어부의 가족이 되기에는 자격미달인것 같다.
사과밭도 있고 벼농사 지을 땅도 있건만
그 위험해 보이는 일에서 벗어날 생각을 않는게 이해가 안되는 것도 그렇고.
이런저런 횟감을 들고 친정으로 향할때면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지금쯤은 이 생선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주실까?
언제부턴가 내가 하저를 사랑하게 되었듯
아버지도 사돈댁이 살고있는 하저를 자랑스럽게 여겨주셨으면 좋겠다.
하저를 지나 대부로 넘어가는 길의 달그림자 비취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밤바다는
하저로 시집가지 않았다면 자칫 놓칠수 밖에 없는 절경인 것을.
그리고 명절에 출가한 딸이 하루에 서너번씩
짬만나면 얼굴 보여주러 왔다갔다하는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인가?
차 타면 10분도 체 안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소위 읍내사람은 바닷가마을을 비하하던 시절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이제는 아름다운 해안으로 소문이 나 하루가 다르게 펜션이 늘어나고 민박촌이 형성되어
어느 곳보다 활기가 넘쳐나는 곳으로 변모한
마을 구석구석의 추석날밤 산책에서 나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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