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입다 외 1
여름을 입다
늘어선 플라타너스 버튼을 풀며 스물여섯 번째 건반을,
마디마디 사다리 딛고 스물여섯 번째 건반을 찾아요
여름은 지금,
붉은 진주를 꺼내 닦는 중
안단테 안단테
여름이 내 오래된 습성(濕性)을 만져요 붉고 긴 손가락으로
그늘을 풀어요
내가 없던 시간을 찌르던 바느질 자국 들었다 놓는 동안
붉은, 여름의 옷깃 스치면 붉은, 번개가 쳐요
천둥소리가 나요
걸어요 또 걸어요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흘리는 곳, 내 안에서 당신은 그늘을 만들어요
스물여섯 번째 건반은 반음, 무심히
눌러주세요 여름의 주인이여
고개를 돌려봐도 그늘 안의 길,
건반의 거리 속으로 다가와
다시 눌러주세요 단조로 맺혀있던 내 울울(鬱鬱)이 달아납니다
여름을 입을 땐
상처도 그늘을 입은 것처럼, 무지개의 물문을 열고
팔 다리를 끼워 넣어요
화음으로 퍼지는 십이성좌
온음을 두르고
고개를 돌려봐도 그늘 안의 또 길처럼
그림수업
벗으면 거품입니까
봄입니까
거품이고 봄입니까
그가 세운 공식의 잉여탑 위로
거품이 기어오릅니다
거품그림자가 거품그림자의 속도로
수명과 질이 우수한
봄을 그립니다 꾀꼬리는 어디 있습니까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봄은 천연식물성입니다
물로 세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떤 봄은
물속에서 먼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과 거품은
빛에 조기 품절될 수 있습니다
탑이 무너지면 탑 그림자는 깁니까 동그랗습니까
그림자를 밟으면, 시든 풀입니까 한가운데입니까
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봄입니까 당신입니까
-계간 <다층> 2017년 봄호
추프랑카_경북 달성 출생.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