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詩를 품는다[2] (46) 썸네일형 리스트형 네모(사각의) 사랑법 사각의 방完 수윤 줄을 타는 게 본업이지, 내친김에 집을 지을 뿐모롱이 돌아가는 지붕귀 처마 아래작고 초라한 집을 짓는다어제 쓸려간 집은 제법 쏠쏠했는데배곯진 않았는데평생 집 한 채 갖겠다는 소원을 이룬 건물 주인이 휘두르는 빗자루 춤만 빼면 수라에선 새끼, 어미, 갓 태어난 새끼를 문밖에 버리며백석 가슴이 미어졌다는데 내가 이 명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목숨을 걸었기 때문 고층 외벽에 줄을 내리고 페인팅하는 집주인이나 꽁무니에 줄 하나 매단 나나 행여, 줄의 긴장에 무관심하거나 방심하거나먹고 남은 찌꺼기에 줄이 매달린 날은 빗질 쓰나미까지 각오해야 한다 오늘이라도 주인이 장기 출장을 가는 요행을 바라며 로또복권을 사듯 줄을 탄다 ㅡ 20231202 ㅡ .. 폐가 폐가 完 수윤 풀밭에 의자 하나 놓였다 누군가 끌고 왔을 긴 생이 녹슨 양철 지붕처럼 인쇄된 의자의 한뉘 숱한 생각들이 앉았다 간 자리에 풀들은 손을 뻗어 조심스레 쓰다듬는데 유난히 긴 팔을 가진 새콩이 끌어안자 삐걱, 관절 소리가 빠져나온다 뻔질난 바람의 유혹과 잠시 맡기고 뒹굴었을 편안의 무게를 의자는 기억하고 있을 테지 이젠 버려진 그 마음조차 포근해오는지 뒤란은 어때 풀밭이면 또 어때 마치 풀밭이 낳아놓은 알처럼 의자는 한사코 넝쿨 속으로 파고든다 다리를 잡고 오르는, 칭칭 감는, 점점 한 몸이 되어가는 넝쿨 의자가 사는 집 소 헐떡이는 소리 한때 쟁기 돌 치는 소리 요란했을 텃밭도 인적 끊어진 지 오래다 ㅡ 20201109 ㅡ 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完 수윤 동살이 눈 비비는 새벽 6시 오르락내리락 4층에서 1층, 시장, 떡방앗간까지 흐느적이는 501호 자야 할머니는 명절이면 낡은 지느러미로 퍼덕이는데 지팡이보다 맘이 더 바쁜데 이번 설에는 이번 설날에는 할머니하고 헤엄쳐 올 작은 부레들이 삼삼해 차 소리마다 귀를 내거는데, 하마나 하마나 차례 지낸 음식 들고 벨을 누르자 끼이~익 어제보다 더 무거워진 문 혼술 홀짝이는 할머니보다 더 늙어버린 씁쓸이 먼저 뛰쳐나온다 이럴 땐 뭐라고 하지? 괜스레 짧은 내 가방끈만 탓하다가 겨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ㅡ 20200127 ㅡ 完! 세잔 물소리경 물소리경 完 수윤 식탁에 밥풀떼기 같은 꽃잎들이 둘러앉자 그녀의 미소가 살아났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비웠을 때 그녀는 풍경소리를 냈다 숨탄것들은 저마다 하나씩 무늬를 가지는 것이라고 햇살이 차려진 식탁에서 다듬고 썰고 지지고 볶으며 그녀는 손등에 새겨진 무늬를 자랑스러워했다 그게 문신인 줄 모르고, 그게 수행인 줄도 모르는 밀대질을 하고 쿠쿠를 깨우는 그녀는 물소리에 經이 쌓인다 식구들을 담아내고 재우던 지붕 아래 큰 그릇도 그녀의 그릇보단 크지 않아서 물소리를 비워내고, 새벽을 비우고, 또 하루를 비워야 하는 물의 수행법 그녀는 그릇 속에서 물소리를 깨우치고 있었다. ㅡ 20190624 ㅡ 完 ! 세잔 * 물소리經 윤사월 윤사월 ㅡ 세잔 完 수윤 ㅡ 오어지가 텅텅 비었다 둘레길이 죽은 뱀처럼 산 중턱에 걸리고 아랫도리 걷은 저수지 늑골에 바람 설레발이 친다 그 많던 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수지 안골 마을 통통하던 뒷집 분녀가 소식 한 장 없다가 뒤틀린 몸으로 되돌아오던 날 저녁 탱자나무 밑 분.. 회한 회한 ㅡ 세잔 完 수윤 ㅡ 낯색을 수시로 바꾸는 가을 꽃이라는 열매라는 한 생을 달려왔던 날들이 조금씩 달아오른다 오어지 둘레길 걸었다 발에 채이는 많은 사람에 일순 당황했지만 걷기엔 더없이 좋은 오후 세월아 네월아 걸어도 자꾸 뒤처지는 아내를 기다리다 걷고 다시 기다리고 .. 10월엔 10월엔 ㅡ 完 수윤 ㅡ 시월엔, 502호 똘이도 애 아빠다 지아비에서 아비로의 변신은 순간이고 이제 죽을 둥 살 둥 먹이 구해와야겠지 똘이보다 한 계절 빨리 체험하던 공원의 후투티도 떠나갔다 먹이를 노란 부리에 떠먹여 주던 후투티의 생각을 똘이도 하고 있을까? 이제 나도 떠나왔다 죽.. 손님맞이[포항원고 45호] 손님맞이 完 수윤 손님이 찾아왔다 할머닌, 당장 끼닛거리 없어도 그냥 보내면 안 된다 하셨지 우선 아랫목에 앉히고 쌍화탕에 생강차 대령했다 아끼고 아끼던 십전대보탕도 두 손으로 받쳐 내놓았지 그제야 물러갔다 달포 뒤 또 다른 손님을 끌고 찾아왔다, 서운한 맘에 본체만체 종일 ..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