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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베끼고 싶은 詩

그리다 만 가을 한 장 / 우당 김지향

그리다 만 가을 한 장  / 佑堂 김지향       
까슬까슬  빛이 바스러지는 가을엔 
바람도 빌딩 꼭지에 꽁지를 내려놓고 쉰다  
몸이 싸늘한 바람을 기다리는 나무마다 지름길로 온 따끈거리는 
햇볕의 불 주사에 따끔따끔 이마가 빨갛게 익는다 
고루 박힌 이빨을 죄다 내놓고 노랗게 웃고 있는 
옥수수 머리칼도 붉게 볶여 곱슬거린다 
도토리 키 재기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발꿈치를 쳐들고 있는 고추밭, 
진다홍 손가락을 대롱거리는 탱탱한 고추송이에 탁, 탁, 날개를 치며 
고추잠자리 떼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건너편 사과밭 사과나무엔 공들여 키운 아기의 발그레한 뺨을 
쓰다듬는 거치른 손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이제 곧 가을공간을 청소할 싸늘한 바람이 몸을 일으켜 
그리다만 삽화 한 장 걷어내 화덕으로, 곳간으로 보낼 
키를 들고 총총히 달려올 차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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