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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글(수필,잡화)

[스크랩] 김치를 못 담그는 여자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맛갈스러운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친정엄마 김치맛이 워낙 탁월해서 결혼을 한 후에도 내내 김장김치를 가져다 먹었고

보통 때도 친정에만 가면 김치 챙기는걸 빠뜨리지 않아 오랫동안 김치 담글일이 별로 없다보니

다섯포기만 넘어가면 도무지 양념 대중이 되지않아 어디서부터 손을 쓰야할지 겁부터 난다

일손 딸리는 집의 외딸로 부엌살림 오래도록 도맡아하면서

입맛 까다로운 아버지 밥상차리는동안 반찬솜씨는 제법이라 자타공인(?)하였지만

김치 담그는 것만은 항상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김치는 정말로 맛있었다

오죽하면 엄마가 하는일은 사사건건 못마땅해시하던 아버지조차

김치맛 하나만은 은근히 동네에 자랑하였으며

학교다닐때 우리집을 자주 들락거린 친구들은 지금도 우리엄마 김치맛을 추억할 만큼 특별한데가 있었다.

 

그래서인가? 우리집에는 유난히 김장을 많이했다

고무다라이가 등장하기 전이어서일게다

오래전엔 김장철만 되면 우리마당에는 � 도라무깡이 등장한다

워낙에 채소농사를 많이하는 집이어서인지 마당에는 무우와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수돗물이 들어오기전인지라 잘 절여진 배추는 리어카에 실어 오십천거랑에 나가 헹궈오곤했다

유난히 추운 시절, 꽁꽁 얼어붙은 바위 조심스레 내려가

고무장갑도 없이 그 많은 배추를 씻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고하신다.

그 힘든 절차를 끝낸 김장의 백미는 역시 버무리는 날이었으리라

양지바른 곳에 멍석이 깔리고

대여섯명의 동네 아줌마들이 김치를 버무리는 동안

엄마는 배추속으로 고기국을 끓이고 노오란 좁쌀썪인 밥을 해서

맛있게도 먹던 정겨운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버무려 땅속에 묻어둔 김치를 머리만 싹뚝 자르고 손으로 길게 찟어

두꺼운 놋양푼에 퍼 군용담요에 둘둘말아 아랫목에 묻어뒀던 밥위에 걸쳐먹는 맛이란

차디찬 밤바람사이로 "찹쌀 떠~어~억"이라 외치는 소년의 구성진 목소리에 군침흘리는 것과는 별개로

가히 환상이었다

 

 "인제 참말로 마지막이데이. 나도 인제 늙는갑다.김치맛도 옛날 같잖고 일도 겁이난다"

말은 그렇게하면서도 늘 아들 딸 집집이 김장 담궈주던 친정엄마가 3,4년전엔 정말로 뚝 끊었다

오십이 넘은 딸이 팔십이 다된 엄마가 해주는 김치를 참 잘도 받아 먹었었는데....

 

또 다시 김장철이다

다른 집 딸들은 친정엄마 김장도 해서 보낸다더구마는

나는 내김장도 못해 떡을 친다

떡을 치든말든 시작이나 하지, 집집마다 주부들이 김장 걱정하는 때에 "나는 김치를 잘 못 담구겠더라~"며

시작도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아예 노래를 부른다

시셋말로 무늬만 주부이다.

어쩌다 작정하고 배추 사 들인날은 옆지기, "마 잘 먹지도 않는데 동원 김치공장가서 담궈오지"하며 기를 죽이고

실제로 나는 가끔 동원 김치공장에서 담궈오기도 한다

그러니 그나마의 내솜씨는 퇴보일로 일수밖에.

 

하지만 그 덕에 우리집에는 늘 동네사람들의 맛있는 동네김치가 쌓인다

갓김치,알타리김치,파김치,배추김치....입맛대로 다 있다.

조금 전 충청도가 고향인 아는 언니가  배추김치,겆절이.갓김치를

너무도 이쁜 김칫통에 가지런히 담아 건네주고 갔다

감동이다

김치보다도 그 챙겨주는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나는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바로 이 글을 쓰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각박한 도시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이웃간의 정을 피부로 확인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나는 김치를 잘 못 담구겠더라~"라는 부끄러운 노래를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게 말 되는지 안 되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단지 나는 이런 따뜻함이,

이 따뜻함에 대한 내 감사가 참 좋다..............

 

 

 

 

 


 

 

출처 : 재경영덕읍향우회
글쓴이 : 김현숙(7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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