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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글(수필,잡화)

[스크랩] 사람은 가고..............

나는 이 카페를 통해서 옆집 감나무얘기를 참 무던히도 했다

이른 봄 연둣빛 움트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윳빛 감꽃피는 이야기

풋감이 굵어가고,

붉게 잘도 익어가던 그 탐스런 감이 흔적도없이 사라진 날 아침의 허망함까지

거의 중계방송하듯 하였으니 옆집 감나무에 대한 내 애정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그렇듯 오랫동안 내게 잔잔한 행복을 주던 옆집감나무,

오늘은 그 감나무의 주인이야기를 하려한다

 

젊은 날 의사인 남편과 사별한뒤 우리동네 사람들에게 약국할머니로 통할 정도로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약국을 운영하면서

슬하의 1남3녀를 하나같이 소위 "사"자 들게 훌륭하게 키워내신

이 할머니의 노후는 정원가꾸는 재미로 소일하시는 것 같았다.

집이 2층인 우리집에서 고개만 내밀면 하루에도 몇번씩  나무를 쳐다보며 손질하는 모습이 눈에 띄곤했는데

어느날부터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어서 이겠거니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감나무는 할머님댁 뒤뜰이어서

집밖 출입하면서 마주칠일은 극히 드물었기때문에 겨울에 못 뵙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겨울이 가고

정원에 봄이 가득하여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혹시 어디 편찮으신건아닌가 걱정하던차에

우연히, 지난 겨울 어느 요양원 근처 논두렁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동네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뒤늦게 접하고 우리 식구들 모두 할말을 잃고 슬픔에 잠겼다

 

잘난 딸들 다 시세마끔 사회활동하기 바빠 늘 적적하던 차에

가장 치명적인건 믿고 의지하던 하나뿐인 아들이 처가따라 케나다에 이민가면서

갑자기 치매증세가 와서 시설에 맡겨진 일주일만의 일이란다

 

고운 얼굴, 나직한 말투,늘 겸손하며 다소곳한 자태....

작년 이맘때,하루아침에 사그리 없어진 붉은 감이 못내 아쉬워

"할머니~이~~왜 벌써 따셨어요?"하며 투정을 부리자

"아~휴~미안해서 어쩌나~"하며 진정으로 미안해 하시던 분,

추워서 밖에 안 나오시나보다 하던 사이에

할머니는 그렇게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셨던거다

 

산다는건.......

 

지금도 나는 창밖의 감나무를 쳐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저렇게 생긴 감을 대봉이라고 한다지?

어른주먹만한 감이 익을대로 익어 금방이라도 떨어질것같은 홍시가 하나하나 늘어난다

우리 식구들은 아침저녁으로 입맛을 다시지만 난 참 슬프다

같은 나무를 한 사람은 마당에서 쳐다보고 한사람은 주방에서 내려다보며

몇마디 주고받았을 뿐이건만 내마음이 왜 이리 아플까?

딸과 사위가 살고있다던데 많이 바쁜가 보다.

때를 놓치고 이적지 나무에 주렁주렁 메달려있는 감이 이젠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주인잃은 슬픈나무......

자꾸자꾸 슬퍼지는 내마음....

주인잃은 슬픈나무에 지금 거짓말처럼 새가 날아들어 노닌다

흡사 까치가 축소된것같은 모양의 애기손바닥만한 작고 앙징스런 새다

자그맣고 고운 자태의 할머니를 닮았구나 싶다

그래서  더 슬퍼지는 내마음...........

 

 

 

 

 

세월이 가면 /박인희
출처 : 재경영덕읍향우회
글쓴이 : 김현숙(7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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