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남탕에 오다 / 세잔
그 곳에선 성류굴의 수정 꽃들이 늘 피고지고 있다
한 방울 이마에 먼저 맛보이더니
이내 투 툭 악보처럼 내 몸를 읽어 나간다
선 낯에 얼핏 몸을 옴추리다
한사코 감추고 감싼 풋고추 따먹지 못해 서운해 하시던
그 죄송으로
오늘은 숫제 놓아 버리고 싶은데
소죽 퍼낸 가마솥에 물을 붓고 발가벗긴 우리를
소죽처럼 담가 두셨다
그런 날 내 몸에선 어김없이 소죽 냄새가 났다
물이 따스해지고 장난기 슬슬 잦아들 쯤
아버지의 까칠한 턱 냄새같은 거친 손길로 믿을 수 없을만큼
보드랍게 보드랍게 씻어 주셨다
한 무더기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
이젠 할머니와 단 둘만 남은 것 같은데
어디 계시는가 도통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다
보이지 않아서, 만져지지 않는다고 안계신 건 아니라는 걸
욕조에 다시 몸을 담는다 푸근하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온몸이 녹진하게 아이스크림으로 스르르 녹아내린다.
ㅡ 20111214 ㅡ
完 ! 石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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